공돌이 22년, 주짓수를 시작하다.
본 포스팅은 포보스 선정 (아님) 군자동 최고의 주짓수 맛집 스트라이브 주짓수에서 아무런 후원 없이 작성되었습니다. 🥋
공돌이 외길 인생 22년.
인생에 스포츠란 e-스포츠 밖에 없던 필자(솔랭 이블린 원챔)가 주짓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연구실 최고참 선배의 권유였다.
항상 맛있는 논문만 소개해주시던 분이 갑자기 그 어느 때보다 신나는 표정으로 주짓수가 재밌다고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얘기하니, 과학자를 꿈꾸는 공학도로써 무엇이 이런 기이한 현상을 일으키는지 알아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주짓수가 그렇게 재밌어요?" 한마디 물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주짓수 도장에서 낯선 도복을 입고 일일 체험을 받고 있었다.
얼떨결에 접한 주짓수에 대한 감상은, "신기함"이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비만과 정상체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즐기는 비범한 체중의 보유자이며 키 181cm 나름 장신으로 근력은 약할지언정 몸통박치기나 누르기의 위력만큼은 어디 가서 지지 않으리라는 근자감을 갖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주짓수 도장에서는 키와 성별, 체급을 불문하고 모두가 즐겁게 가지고 노는 공이 되어 있었다.
왼쪽으로 구르고, 오른쪽으로 구르고, 뒤집히고, 엎어지고...
"뭐지 버근가?" 싶은 생각이 들 때쯤 시간을 보니 어느새 1시간 30분 가량의 수업이 끝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뭔가에 홀린 듯 3개월권을 결제했다.
공돌이 22년간 지켜온 컴퓨터만 하는 너드 해커 이미지를 포기한 순간이었다.
나는 무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스스로 운동 신경이 좋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했고, 특히 -8 디옵터의 경이로운 시력을 자랑하는 내게, 상대방의 움직임을 보고 대처해야 하는 무술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맞는 건 아파서 싫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주짓수를 해보니, 잡기 기술 위주의 운동이기에 멀리서 날아오는 주먹이나 발을 보고 견제해야 할 필요도 없었고, 스파링을 할 때도 서로 아프게 패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발전시키는데 집중하는 느낌이 들었다.
왜 해보지도 않고 나랑 안 맞을거라 생각했을까.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키만 컸지 체력과 근력은 전혀 없는 진성 공돌이였다.
심지어 군대에서까지 소프트웨어 개발병이라는 신의 보직을 받아 키보드만 친 나는 그야말로 자율주행 샌드백 정도였으리라.
처음에는 아직 기술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넘어가고, 죽을힘을 다해 기술을 걸고 있는데 "힘 준거예요?" 소리를 듣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나 기술을 깔끔하게 걸기만 하면 정말 적은 힘으로도 나보다 훨씬 센 상대를 넘길 수 있었고, 배운 기술이 많아질수록, 내 기술의 디테일이 올라갈수록 그 빈도가 늘어나는 것이 굉장히 뿌듯했다.
틈만 나면 주짓수 기술을 복기하고, 도장에 가서 스파링하고, 체력을 기르다 보니 어느새 4개월이 흘렀다.
여전히 나는 많이 부족하지만 살은 6kg가 빠졌고, 체력은 강해졌으며, 주짓수는 매번 새롭고 즐겁다.
내가 운동에서 즐거움을 느낄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참 신기한 일이다.
공돌이들한테 운동이란게 참 애증의 존재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해야지 싶은데, 막상 하려니 귀찮고 낯설고 재미없다.
가끔 3대 500 이상 치시는 파워 공돌이들도 계시지만, 매일같이 쏟아지는 신기술 따라가고 코딩하기 벅찬 우리에게 운동은 참 어려운 일이다.
엄청난 의지로 운동을 시작해도 공부가 바빠서, 프로젝트 마감이 바빠서와 같은 다양한 핑계로 1,2주 쉬고 나면 다시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기에, 결국 운동이 즐겁지 않으면 오래 하기는 힘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군자 스트라이브에서 주짓수를 접한 것은 행운이었다.
일정이 불규칙적인 학부 연구생도 다닐 수 있는 다양한 시간대와 초보자 친화적인 분위기의 수업, 무엇보다 하나같이 성격 좋으시고 친절하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시는 관원들과 관장님이 계셔서 평생 운동 안 해본 공돌이도 잘 적응하고 즐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혹시 독자님도 운동을 고민하고 계시다면, 주짓수 한번 도전해보시기 강권한다.
다이어트, 운동 효과도 좋지만, 정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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