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과 잘 싸우는 법
누군가와 관계를 맺다 보면 갈등은 불가피하다.
특히 서로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민감하고 어려워지는 것이 갈등인 것 같다.
가까운 관계에서의 갈등은 정말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다.
내게 있어 정말 중요한 선을 상대가(혹은 내가) 넘어서 발생하기도 하고, 때로는 별것도 아닌 일로 갈등이 생겨 감정싸움으로 발전하고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이렇게 상처를 주고받으면 가까운 사람일수록 큰 후회가 돌아오는 법이다.
그러나 군주론에서 말했듯, 사람은 자신에게 공포와 고통을 주는 사람보다 사랑을 주는 사람에게 더 쉽게 상처 입힌다.
나도 돌이켜보면 소중한 사람에게 쉽게 상처를 주고, 후회한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나는 고등학생 때, 아버지와 싸우며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싸움을 잘 하는 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아래는 내가 수 년간의 싸움 경험(?)과 고민 끝에 터득한 "소중한 사람과 잘 싸우는 방법"이다.
소중한 사람과 잘 싸우는 5가지 방법
- 싸움의 목표를 명확히 해라.
- 정중함을 잃지 말아라.
-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상대방이 사과하면 받아줘라.
- 내가 받은 상처만큼 상대를 해하려 하지 마라.
- 싸움의 목표가 달성되면, 바로 싸움을 멈춰라.
먼저, 싸움의 목표를 명확히 해라.
싸움에는 모두 목적이 있다.
갈등의 원인이 된 문제 상황을 해결하려는 것이나 상대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려는 것, 자신의 감정을 상대가 이해해주고 적절한 대처를 해주기를 바라는 것 등이 흔한 경우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식의 잘못된 행동을 혼내려 할 때, 부모는 자식의 잘못된 행동을 인지하고 반성토록 하려고 하고, 자식은 자신의 행동의 원인이나 억울한 점을 부모가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갈등의 원인이다.
만약 이런 이유라면 싸움을 멈춰라.
그런데 만약 싸움의 목적이 명확하지 않거나, 올바르지 않은 경우, 혹은 싸워서 쟁취할 만한 것이 아니라면 싸움은 불필요한 감정 소모에 불과하다.
싸움의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면, 일순간의 감정(분노)에 의한 싸움일 수 있다. 정중하게 상대에게 잠시 생각을 정리하게 해 달라 하고, 정말 싸움의 목적이 없다면 싸움을 멈추는 것이 좋다.
싸움의 목적이 올바르지 않은 경우는 상대방이 자신의 뜻을 일방적으로 따르기를 바라거나(굴복), 자존심 때문에 싸움을 계속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주로 애증관계인 연인 관계나 부모 관계에서 발생하는데, 연인이 자신의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싸우거나, 부모가 자식이 자신이 원하는 데로 행동하기를 바람에서 싸움이 된다.
이때,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사과를 바라는 것과, 상대의 입장을 듣지 않고 무조건적인 사과나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구분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싸움의 목적이 싸워서 쟁취할만한 것이 아닌 경우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식에게 일찍 자라고 요구했을 때, 자식이 이를 거부하거나 부모가 이를 강요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미미하다.
자식을 고작 몇 시간 일찍 재운다고, 혹은 부모님 의견을 무시하고 고작 몇 시간 늦게 잔다고 큰 이득이 있지 않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가 양보 없이 갈등을 발생시키면, 결국 몇 시간 싸움은 싸움대로 하고 감정만 상한다.
이런 경우에는, 두 사람이 감정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의견을 조율하거나 한쪽이 양보하여 싸움을 발생시키지 않아야 한다.
이를 상대가 양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오해하지 말라.
양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사실상 먼저 하는 사람이 승자다.
목적을 알면 싸움이 작아진다.
소중한 사람을 상처 입히려고 싸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싸움으로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것을 명확히 하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줄어들고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다.
싸움의 목적이 명확해졌다면,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싸워라.
과거에 있었던 아쉬웠던 일이나 묻어두려고 했던 상대의 결점을 꺼내 들면 싸움의 목적 달성에는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자칫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만약 상대방이 싸움의 목적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조금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중하게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해라.
"나는 방금 이런 문제 때문에 너에게 서운했어. 그렇지만 너랑 지금 이 문제를 잘 해결해보고 싶어."
물론 이 방법을 따른다고 상대가 무조건 현재의 문제에 대한 얘기만 건전하게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싸우는 중에 상대방이 정중함을 잃었다고 나까지 정중함을 놓아버리면, 결국 싸움은 모두가 상처 주고 상처받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정중함이 최고의 무기다.
평소에는 한없이 친절하고 정중하다가, 싸움만 나면 인신공격이나 고성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 많은 말 중에 상대가 가장 크게 상처받을 말을 고르고 골라 날리는, 마치 상대를 쓰러뜨리려는 듯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싸움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가장 도움이 되는 무기는 고성도, 날카로운 말도 아닌 정중함이다.
싸움에서의 정중함이란 최대한 차분한 감정을 유지하면서, 싸움의 목적-갈등의 해결을 위해 상대를 공격해야 할 적이 아닌 뜻을 맞춰야 할 동료로 보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자신의 잘못이 있다면 쿨하게 인정하는 자세이다.
싸움의 목적은 갈등의 원만한 해결이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정중하게 싸우는 비결이다.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선, 싸우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상처 입혀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선 안된다.
내 의견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만약 내게 잘못한 점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상대가 정중히 사과한다면 받아주어야 한다.
사과는 단순히 "미안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부분을 미안하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실천의 의지를 표현해주면 좋다.
"미안한데 너도~" 식으로 상대의 잘못을 곧이어 지적하거나, "네가 먼저 사과하면 나도 사과할게"라는 식의 흥정, "암튼 미안해"같이 선심 쓰는 듯한 사과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자신과 원만한 갈등 해결을 위해 정중하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화를 내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불같이 화를 내다가도, 상대가 몇 분이고 화를 안 내고 정돈된 말로 갈등을 해결하려고 하면 목소리를 줄인다.
다만, 정중한 자세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여도 상대가 호응을 해주지 않는다면 역시 정중함을 유지한 채, 강한 유감을 표현해주는 것이 좋다.
"난 너랑 싸우고 싶지 않은데, 네가 계속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내 탓을 하니 괴롭고 슬퍼. 우리 잠깐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게 좋겠다."
이렇게까지 하고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 상대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고 절연하는 게 목표가 아닌 이상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설 것이다.
나도 화가 나는데 어떡해요?
사실 정중하게 싸우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특히 상대가 나를 존중하지 않고 계속 공격해 온다면,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정중함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어차피 싸우면 상대는 내게 상처를 주게 되어있다. 그런데 내가 정중하게 나서면, 상대는 상처를 받지 않아도 된다.
손해 같다고? 싸움의 목적은 내가 입은 상처만큼 상대를 상처 입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싸움 방법이 상대도 아무런 타격 없이 싸움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정중한 상대와 싸우고 진 상대는 상처 대신 부끄러움을 얻는다. 냉혈한이 아닌 이상, 남에게 일방적으로 상처를 준 기억은 오래 남는다.
상대는 당신과 싸운 기억 때문에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고, 향후 당신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거나 뭔가 보상할 확률이 높다.
그러니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서 정중함을 지켜라.
당신과 싸운 사람은 당신과 멀어지기보다 당신을 신뢰하고 존경하게 될 것이다.
목표가 달성되면 싸움을 멈춰라.
싸움을 통해 목적이 달성되면 즉시 싸움을 멈춰라.
자신이 잘못한 점은 다시금 사과하고, 서로의 합의점을 다시 짚어보고, 가볍게 감사를 표하는 정도가 적절하다.
"아까 내가 네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 점은 정말 미안해. 방금 얘기한 데로 앞으로는 서로 일정을 자주 공유하기로 하자. 마음고생 많았어. 내 얘기 잘 들어줘서 고마워."
싸우는 과정에서 억울했던 점이나 부정적인 말들은 잠시 묻어두는 것이 좋다. 싸움을 마치고 감정을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다시 그런 얘기를 하면, 새로운 싸움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대한 정중히, 사실만을 기반으로 얘기하도록 하자.
"아까 네가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모습이 너무 무섭고 슬펐어. 앞으로는 서운한 일이 있다면 바로바로 얘기해줬으면 좋겠어."
소중한 사람일수록 많이, 잘 싸워라.
가까운 사람도 결국은 나와 다른 사람이다. 살다 보면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가깝고 소중하다고 갈등을 피해선 결국 언젠가 크게 싸우게 되어있다.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은 이해해주되, 조금이라도 서운한 점이 있다면 싸워라. 대신 잘 싸워야 한다.
싸움에 뒤끝이 없도록 하고, 싸운 뒤에는 서로 감정을 최대한 빨리 푸는 것이 좋다.
자존심 세우지 말고, 같이 맛있는 것을 먹거나 재밌게 놀자.
이렇게 하면 싸움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일이 아닌, 관계를 끈끈히 해주고 신뢰를 더해주는 일이 될 것이다.
소중한 사람과 싸우는 이유는 상대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상대방이 소중하지 않다면, 욕 한번 시원하게 날려주고 다시는 상종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정중하게 힘들게 싸우는 이유는, 그 고생 끝에 상대와 더 잘 지내기 위함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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