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전문연구요원과 산업기능요원, 군 입대의 기로에서 시작된 군대에 간 공돌이 시리즈를 전역 후 어느덧 1개월이 넘게 지난 지금 마무리합니다. 제 부족한 글 솜씨에도 불구하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분들과, 이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군대라는 조직과 내가 부딫히기 시작한 것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성화 고등학교를 다니며 운 좋게 산업기능요원으로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나, 유난히 춥고 힘들었던 2018년 1월, 나는 군대에 가더라도 대학교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취직과 대체 복무를 포기하고 남들 다 입시 준비하는 고등학교 2년간 코딩만 해왔던 나는 그야말로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입시생의 삶으로 뛰어들었다. 다..
최근에 넷플릭스의 기업문화를 소개한 "규칙 없음"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단어 중 하나는 "인재 밀도"였다. 어떤 조직에 속한 인재의 밀도에 따라 개개인, 나아가 조직 전체의 성과와 행동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나름 다양한 조직에 속했었다고 자부한다. 내 또래라면 누구나 거쳐 온 학교, 학원뿐만 아니라, 지역 단위로, 혹은 전국에서 모이는 스터디 성격 모임, 학회, 개발자 커뮤니티, 혹은 그저 술 먹고 놀자고 만난 모임이나 게임에서 모인 길드, 학생회, 심지어 운동권 모임에도 잠시 있어봤다. 다양한 조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것은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끼리 모인 것인지, 혹은 조직의 분위기가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조직과 조직 구성원은 매우 긴밀한 연관..
2021년 3월 15일, 추운 겨울이 지나고 제법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던 그날. 나는 입대했다. 3월 15일 "공군 교육사령부"라는 글귀가 새겨진 정문을 지나자 빨간 모자를 쓴 조교들이 약간 크고 무거운 목소리로 우리를 인솔했다. "입영 장병들은 저쪽 주차장으로 속보로 이동합니다!" 특별할 것 없는 문장, 그러나 무겁고 어딘가 절도 있는 목소리와 동작이 그때까지만 해도 두렵기보단 신기했다. 주차장에 10열로 서서 우리를 데려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별안간 커다란 장갑차가 굉음을 내며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장갑차는 우리 바로 앞까지 와서는 주차라인에 맞춰 차를 멈췄고, 차량에서 내린 군인들은 우리를 흘깃 보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순간 장갑차의 위용과 커다란 굉음, 거기서 내린 군인들의 ..
코로나. 2020년 새해가 뜨자마자 등장한 이 녀석과 사회에서 1년, 군대에서 1년을 함께했다. 이 녀석 때문에 독감으로 죽기 직전인데 병원 문 앞에서 쫓겨나도 보고, 입대하자마자 1주일 격리도 당해보고, 휴가도 막혀보고,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군인이라는 신분 덕분에(?) 남들보다 먼저 예방접종도 받아가며 이 녀석과 싸웠고, 3번의 예방접종을 마친 후에는 약간의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장병 인권 문제로 결국 막혀있던 외출과 휴가가 풀렸을 때, 몇 달간 잘 돌아가는 부대를 보며 "결국 이겼구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적에게 일격을 가한 영웅이 가장 해서는 안될 말이 뭔지 아는가? 해치웠나? 젠장, 이긴게 아니었다. 코로나로부터 가장 안전한 곳, 코로나가 들어오기 전까진. 부대 안에서 노래방도 가고, 치..
2021년 3월 15일. 입대한 나를 가장 먼저 놀라게 한 것은 공군 교육사령부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내가 머물었던 신병 4대대의 낡은 건물 창밖에는 훈련 기간 내내 분홍빛 벚꽃이 액자 속 그림처럼 피어있었다. 훈련에 지쳐 무너질 것 같을 때, 외로움과 그리움에 미칠 것 같을 때도 생활관에만 복귀하면 아름답게 피어있던 벚꽃은 때로는 날 위로해 주는 것 같기도하고, 때로는 날 비웃는 것 같기도해서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2021년 9월 18일. 생활관 주변에 떨어진 낙엽을 쓸고있자니 문득 교육사에서의 추억이 떠올랐다. 훈련소에서의 5주는 영원같이 느껴졌는데 어느덧 계절이 두번이나 바뀌고 나는 일병 말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서일까, 이제는 부대안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봤을 때 비참하거나 우울하기..
와, 마침내 끝났다. 공군 입대를 하루 앞두고 티스토리에 글을 쓴 기억이 난다. 막 밀어서 거칠거칠해진 내 머리를 어루만지며, 글은 쓰고 싶은데 시간이 없단 생각이 들어 짧게나마 당시의 기분을 글로 남겼었다. [입대 1일 전] 빡빡 민 공돌이 와. 솔직히 어제까지만 해도 실감이 안 났는데, 오늘 아침에 눈 뜨니까 실감이 나더라. 내 선배도, 친구도, 동생이나 후배도 아니고 마침내 내가 군대갈 날이 왔다. 마지막으로 군대에 가져갈 짐 skyil.tistory.com 이제 자대에 와서, 사지방에 앉아 이 글을 읽어보니 뭔가 먼 과거 같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하다. 만약 내가 저 글을 쓰던 시점의 내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아래와 같은 조언을 해주고 싶다. 군입대를 앞둔 너에게 우선, 마지막 시간을 소중한 사..
와. 솔직히 어제까지만 해도 실감이 안 났는데, 오늘 아침에 눈 뜨니까 실감이 나더라. 내 선배도, 친구도, 동생이나 후배도 아니고 마침내 내가 군대갈 날이 왔다. 마지막으로 군대에 가져갈 짐들을 확인했다. 입영통지서, 신분증 자격증 우표 (익특 3000원짜리) 귀마개 여분 마스크 여자친구 사진 안경 빠짐 방지 고무 시계 텀블러 (코로나 전염 방지를 위해, 컵 대신 사용) 여분 옷과 수건 세면용품 (칫솔, 수건, 로션 등) 써놓고 보니 많아 보이지만, 내가 애용하던 책가방 하나에 모든 짐이 들어갔다. 노트북이 없으니 정말 가벼워서 새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머리를 밀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마침내 미용실에 갔다. 미용사분이 내게 와서 친절히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물으시더라. 6미리, 삭..
미쳤다. 입대 10일 전이다. 아니, 사실 8일 전이다. 10일 전이라는 제목은 뭔가 딱 맞춰보려고 쓴 거고, 실제론 그것보다 덜 남았다. 필자는 지금부터 8일 후인 3월 15일, 공군으로 입대한다. 12월 경 모집한 공군 특기병 모집에서 전자계산병으로 지원하였고, 합격하여 입대 후 별다른 특기 분류 절차 없이 전자계산병(흔히 말하는 전산병)으로 배치받게 됐다. 내가 3개월 긴 공군을 선택한 이유 3월 15일 입대 후,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나는 21개월의 병무를 마치고 2022년 12월 14일 전역할 예정이다. 이는 18개월을 복무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택하는 육군보다 3개월 긴 기간이다. 일반적인 육군 복무기간보다 긴 시간을 복무함에도 공군에 지원하고, 까다로운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과하면서까지 내가 ..
군대에 가야겠다. 그렇다. 나는 군대에 가기로 했다. 이 글은 열린 결말이나 희망찬 결과 따위가 아닌, 우울하지만 최선이라 생각하는 결과까지 내 생각이 수렴한 과정을 쓴 글이다. 물론 모든 진로 결정은 사바사, 케바케이기 때문에 내가 내린 결정이 보편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학생들을 군대에 보내기 위해 부모님들이 내 글을 인용하여 자식 설득에 나서실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모님이라면 그랬을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힘내시라. 이 글에서 대학원 진학이란, 석사 혹은 박사 과정 중에 전문연구요원 제도(통칭 전문연)를 이용한 병역 이행을 얘기하는 것이다. 전문연구요원 제도란, 국내 이공계 인재 양성을 위해, 이공계 학사 학위 소지자나 박사 과정 학생이 중소기업 근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