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얘기] 2편. 자율과 책임이 따르는 병영생활
최근에 넷플릭스의 기업문화를 소개한 "규칙 없음"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단어 중 하나는 "인재 밀도"였다.
어떤 조직에 속한 인재의 밀도에 따라 개개인, 나아가 조직 전체의 성과와 행동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나름 다양한 조직에 속했었다고 자부한다.
내 또래라면 누구나 거쳐 온 학교, 학원뿐만 아니라, 지역 단위로, 혹은 전국에서 모이는 스터디 성격 모임, 학회, 개발자 커뮤니티, 혹은 그저 술 먹고 놀자고 만난 모임이나 게임에서 모인 길드, 학생회, 심지어 운동권 모임에도 잠시 있어봤다.
다양한 조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것은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끼리 모인 것인지, 혹은 조직의 분위기가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조직과 조직 구성원은 매우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나는 생각 이상으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주변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내 성격도 확확 바뀌었던 것 같다.
군대 얘기를 하려다 말고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가 내가 경험한 조직 중 가장 특이하고 가장 인재 밀도가 높은 조직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약 20개월을 보낸 내 자대, 공군 정보체계관리단 이야기이다.
병장들 사이에 떨어진 신병
훈련소와 특기학교에서 약 1개월의 교육을 마치고, 나는 마침내 내 나머지 군생활을 보낼 자대에 도착했다.
진주에서 출발한 버스가 우리를 부대 앞에 내려주자 일병 약장을 단 선임이 나와 동기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는 앞뒤로 보급품이 가득 든 더플백을 매고, 긴장한 채 선임을 뒤따라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자대에 따라 다르지만, 최근에는 동기 몇 명과 선임 한 명이 함께 생활하는 동기 생활관 제도를 운영한다고 들어서 우리도 당연히 한 방을 쓰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코로나 격리 생활관 운영으로 방이 부족하여 별안간 우리 보고 빈자리가 있는 생활관에 각자 찢어져 들어가라는 것이 아닌가?
내가 들어간 곳은 13생활관이라 적힌 생활관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도 없이 어둡고 정리가 되어있지 않다는 인상의 생활관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른 생활관에 비해 매우 깨끗한 편이었다.)
선임들이 오전 일과를 마치고 올 때까지 짐을 풀고 기다리라는 말에 나는 필수적인 짐들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곳에 2주일 이상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아주 간단한 짐만을 풀고, 긴장한 채 구석 자리에 앉아 상황을 파악하려는 생각이었다.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던 옷걸이에 걸린 전투복을 보니 작대기 4개의 병장 약장이 달려있었다.
옳거니. 내가 신병이라 최선임인 생활관장 옆자리를 주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주변을 계속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나머지 자리에도 모두 병장 전투복이 걸려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 사람들이 아무리 자리가 없다지만 신병을 병장들 사이에 끼워두다니, 나보고 24시간 긴장 풀지 말고 있으란 얘긴가?
어안이 벙벙한 채 조금 앉아있다가, 우리를 인솔한 선임이 다시 모이라 하여 함께 점심을 먹고 오니 생활관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때 그 커피 한 잔
문을 열기 전 심호흡을 했다.
앞으로 얼마나 이 병장 생활관에 있을지 몰라도, 병장들에게 책 잡혀서 좋을 게 없는 건 분명하다.
문을 벌컥 열고 다짜고짜 인사를 박았다. 건네었다는 표현보다도 박았다는 표현이 적합한 인사였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새로 전입 온 824기 백지오 이병입니다!!
인사를 하고 보니 생활관 안에는 3명 정도의 사람들이 각자 태블릿을 보거나 하며 쉬고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들린 인사 소리에 날 슥 보더니 각자 "아.. 신병이구나"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곤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중 한 명이 나에게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등을 묻다가 대뜸 커피를 권했다.
아, 1일 2 커피를 안 하면 살지를 못 하던 내가, 훈련소에서 남들이 숨겨온 카누 믹스커피를 나눠 받아 한 포를 3일에 걸쳐 나눠먹던 세월이 스쳐 지나갔다.
이걸 거절해야 예의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거절하기엔 카페인을 못 먹은 세월이 너무 길었다.
앗, 주시면 정말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커피는 무슨 커피일까? 원래 커피에 한해선 미식가처럼 까다롭게 구는 나지만, 지금이라면 믹스커피든 뭐든 감사히 먹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선임이 꺼내 든 것은 그야말로 예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핸드드립 세트. 손이 많이 가서 웬만한 카페에서도 잘 안 하는, 밖에서야 매일같이 내가 다뤘지만 지금은 꿈에서나 보던 도구 아닌가?
선임은 핸드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고, 끓인 물을 주전자에 담아와 능숙하게 커피를 내렸다.
사회에 있을 때도 커피를 내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 순간 내가 목격한 그것은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물을 붓자 부풀어 오르는 커피 원두와, 주변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향,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리는 와인 빛 커피.
잠시 후, 선임은 종이컵에 커피를 담아 내게 건넸다.
내가 감히 이걸 마셔도 될까? 얼마 전까지 날 혼내고 군기를 잡던 조교들보다도 선임인 이 사람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커피를?
고작 커피 한잔으로 무슨 유난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1개월 넘는 시간 동안 초면인 사람들이 좌로 구르라면 좌로 구르고 우로 구르라면 우로 구르고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던 나에게, 그 한잔의 커피는 그야말로 내가 잃어버렸던 자유의 상징이었다.
긴장했던 탓인지 그날 먹었던 커피의 맛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당시 느꼈던 벅차오르는 감정과 에너지는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백지오는 입대하고 24번 훈련병이었다가 특기학교에서 14번 교육생이 되었다. 그리고 이 순간, 다시 백지오가 되었다.
선임과 후임
커피 사건 이후 나는 금방 생활관과 부대에 적응했다.
코로나로 인한 생활관 부족 문제는 심각해서, 나와 동기들은 적어도 한 달은 흩어져 살아야 한다고 들었지만 나는 오히려 좋았다.
13 생활관에 있는 사람들은 809기 ~ 811기 사람들로, 나보다 1년 이상 군대를 빨리 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 점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 막 군대에 적응하고 있는 나를 모두가 잘 챙겨주고 배려해주었지만, 나보다 군대에 몇 개월 늦게 왔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나는 군 생활에 있어 어려움이나 의문이 있으면 선임들에게 물어봤고, 그들은 내 의문에 친절히 그들의 생각이나 답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들의 답을 존중했고, 알려준 것들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나는 선임들의 경험과 그들이 보낸 시간들을 존중했고, 선임들은 나와 후임들의 인격과 생각을 존중했다.
우리는 때로는 사제지간처럼, 때로는 부모 자식처럼, 대개는 친구처럼 지냈다.
동아리 생활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걸 안 생활관 선임은 나를 커피 동아리에 데려갔다.
자자잔이라는 이름의 커피 동아리는 나름 역사와 깊이가 있는 모임이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병사들끼리 휴게실에 모여 각자가 내려온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도 나누고, 커피나 커피 만드는 법을 평가하기도 한다.
전역을 앞둔 병장부터 막 들어온 신병, 모두가 커피를 마시며 웃는다.
이쯤에서 우리 부대에서 모든 대화가 존댓말로 이루어진다는 얘기를 해야겠다.
물론 친한 사람들끼리야 합의하에 반말을 쓰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모든 대화는 상호 존댓말이다.
나이가 어떻든, 계급이 어떻든, 서로의 인격을 존중한다.
커피 동아리뿐 아니라 모든 일상에서, 계급은 그저 군대 경험에 있었던 시간을 의미할 뿐이다.
커피 동아리에서의 시간은 그야말로 행복 그 자체였다.
부대에서 컨퍼런스를 열다.
부대에 전입 온 후 몇 개월, 나는 IT 동아리를 설립했다.
기존에 IT 동아리가 있기는 했으나, 오랜 기간 활동하지 않아 유명무실해진 상태였다.
나는 기존 IT 동아리를 운영하던 선임을 찾아가, 동아리를 물려받아도 될지 물었고, 그는 흔쾌히 허락했다.
마침 곧 우리 부대는 추석을 앞두고 있었고, 나는 컨퍼런스를 기획했다.
<전산 한마당 발표자를 모집합니다!>
주제: IT와 관련된, 혹은 부대원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정보
장소: 휴게실
일시: 추석 연휴 간 진행
발표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어쩔지 걱정이 되어,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발표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발표를 자원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발표를 듣기 위해 찾아왔다.
발표자들은 프로그래밍, 음악, 창업, 당구 등 그야말로 다양한 분야의 발표를 준비해왔다.
발표 시간이 되자 수십 명의 사람이 발표를 듣기 위해 휴게실에 찾아와, 휴게실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수많은 사람들이 30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까지, 벽에 기대어 서서라도 발표를 들었다.
전산 한마당을 마치고, 몇 사람이 나에게 메일을 보냈다.
군 생활의 끝을 앞둔 병장님의 감사 인사, 발표를 평생 처음 해봤다는 후임의 즐거웠다는 경험담.
예상 이상으로 뜨거운 반응에, 컨퍼런스를 준비하며 고생한 시간이 보답받는 기분이었다.
전산 한마당은 연 2회 개최하는 연례 행사가 되었고, 간부님들을 통해 지원금도 소정 받게 되었다.
나는 두 차례의 전산 한마당을 진행하였고, 마지막에는 후임에게 인수인계하여 이 행사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산 한마당은 진행할 때마다 규모가 커지더니, 가장 최근 진행된 전산 한마당에는 12개의 고퀄리티 발표에 100명 이상의 참여자가 몰렸다.
이런 행사가 가능한 조직이 얼마나 있을까.
대가 없이 바쁜 와중에 발표를 준비하여,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타인에게 나누고, 이런 발표를 직급이나 나이에 개의치 않고 들으며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조직이라니.
자율위원회: 자유에 따르는 책임
이 글을 보며 짐작했겠지만 우리 부대는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이다.
근무 시간 외에 서로가 무엇을 하던, 크게 신경을 쓰고 제한하지 않는 분위기이며, 이는 병사와 간부, 선임과 후임 모두에게 게 적용된다.
이런 자유에는 필연적으로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 병사 자율위원회이다.
병사 자율위원회는 학교의 학생회와 비슷한 조직으로, 병사들의 자원으로 구성된다.
자율위원회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업무는 병영생활 운영이다.
청소 인원부터, 식당 지원 근무이나 공용품 운반 등 병영생활 중에 발생하는 다양한 업무에 참여할 인원을 선발한다.
이때, 계급이 높거나 낮다고 일을 모두 떠안는 일은 없다.
덕분에 계급이 낮은 일병들은 고생하고, 상병이 되면 관리자 역할을 하고, 병장이 되면 노는 일반적인 군대의 상식은 우리 부대에선 통하지 않는다.
내 친구들은 내가 일병이던 무렵 "너는 무슨 병장도 아니고 그렇게 자유시간이 많냐."라고 하다가, 내가 병장이 되니 "넌 병장이 무슨 할 일이 그렇게 많냐."라고 하더라.
업무 분배 이외에 자율위원의 큰 업무는 병영생활 규정 운영이다.
위에도 말했듯이,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우리 부대에서는 이 책임을 "병영생활 규정"이라는 형태로 진다.
기본적인 군생활 규정이야 법률과 공군 병영생활 규정에 명시되어 있으나, 이는 그야말로 기본적인 것들이고, 병영생활 중에 발생하는 세부적인 문제에 대한 처리는 각 부대마다 방법이 상이하다.
병영생활 규정은 우리 부대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다.
병사의 잘못을 병사들이 만든 규정으로 처리하고, 책임진다.
예를 들자면, 화장실 사용 규정을 어긴 사람은 화장실 청소를 2회 하는 식이다.
이 규칙은 문제를 일으킨 병사의 계급이나 나이, 친분과 관계없이 적용된다.
물론 억울하다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이 경우 자율위원회 회의가 소집되어 페널티를 심의한다.
이 결과도 억울하다면 간부에게 공식적으로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는 절차도 있다.
우리 부대에선, 간부와 병사 모두가 이 규칙을 존중한다.
간부들은 병사들의 자율적인 규칙 운영을 신뢰하고, 병사들도 누구든 잘못하면 그 책임을 진다는, 신상필벌을 믿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각자가 주어진 자유를 누리고, 책임을 함께 진다.
나는 일병 말부터 전역 3개월 전까지 1년간 자율위원을 했다.
위에 적은 것처럼 모든 경우가 이상적으로 매끄럽게 진행되지는 않았으나, 내가 한 고생이 우리 부대의 자율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더 나은 조직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고, 그 결과를 직접 보았기에 후회 없는 시간이었다.
인재 밀도와 좋은 조직 문화의 선순환
군대라는 조직의 구조적 문제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려져 있다.
사실 내가 아무리 좋은 조직을 만들고 떠나도, 내 아래 후임이 선임이 되어 후임에게 갑질하고, 불합리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어놓으면 내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이것이 사회에 나가면 "나는 부조리 다 없앴어"라고 말하는 전역자는 많은데, 군대 안에서 아직도 부조리가 많이 일어나는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부대는 특이한 부대이다.
부대 특성상, SW와 관련된 특정 분야의 사람들이 몰리고 그들 중에서도 공군 특성상 훈련소와 특기학교 성적이 우수한 사람들만이 모이게 되어있다.
일정 수준의 인재 밀도가 유지되는 것이다.
넷플릭스에는 휴가 규정, 비용 사용 규정 등 흔히들 생각하는 필수적인 규정들이 없다고 한다.
넷플릭스는 그럼에도 세계 최고의 기업 경쟁력을 가진 조직이다.
넷플릭스는 그 비결이 높은 인재 밀도와,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기업 문화라고 말한다.
높은 인재 밀도를 가졌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나태하거나 이기적인 사람이 있더라도 그의 태도가 조직 전체를 물들이지 않는다.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고, 누구라도 자유를 남용하면 책임을 지는 기업문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선을 지킬 수 있게 한다.
우리 부대가 자율위원과 병영생활 규정으로 실현하고 있는 것들이다.
군대에 이 정도로 조직 문화가 뛰어난 부대가 있을지도, 그 부대에 내가 속하는 행운이 주어질지도 몰랐다.
이런 환경을 어느 부대에나 똑같이 적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슷하게는 가능하리라고 본다.
자유와 책임, 군인 정신에서도 강조하는 "신상필벌"의 문화를 군대에 정착시킨다면, 많은 부대들이 충분히 우리 부대 못지않게 좋은 환경을 갖출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군대의 모습을 언젠가 볼 수 있기를 소망하며, 지금은 감사하단 인사를 먼저 해야겠다.
이런 문화를 만들고 정착시켜 준, 수많은 선임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문화를 지속하고 발전시켜나가는 우리 부대원들, 간부님들께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앞으로도 이런 문화를 이어가줄 후임들, 특히 전산 한마당을 이어받아준 유 병장과 자율위원회에서 내 후임이 되어준 심 상병에게 마음 깊이 감사한다.
내가 우리 부대 출신임이 자랑스럽다.
이런 조직에 속할 기회가 있었던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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