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얘기] 1편. 공돌이 입대하다.
2021년 3월 15일, 추운 겨울이 지나고 제법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던 그날.
나는 입대했다.
3월 15일
"공군 교육사령부"라는 글귀가 새겨진 정문을 지나자 빨간 모자를 쓴 조교들이 약간 크고 무거운 목소리로 우리를 인솔했다.
"입영 장병들은 저쪽 주차장으로 속보로 이동합니다!"
특별할 것 없는 문장, 그러나 무겁고 어딘가 절도 있는 목소리와 동작이 그때까지만 해도 두렵기보단 신기했다.
주차장에 10열로 서서 우리를 데려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별안간 커다란 장갑차가 굉음을 내며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장갑차는 우리 바로 앞까지 와서는 주차라인에 맞춰 차를 멈췄고, 차량에서 내린 군인들은 우리를 흘깃 보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순간 장갑차의 위용과 커다란 굉음, 거기서 내린 군인들의 모습에 아마 그 자리에 있었던 모두가 군대에 왔다는 실감을 느꼈으리라.
장갑차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으니 곧 내가 탈 버스가 주차장에 들어왔다. 하늘색 무늬에 적힌 글귀가 기억에 남는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
함께 입영한 장병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이내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가 출발하자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Take me to London, Paris, New york city들~
맙소사, 볼빨간사춘기라니. 그것도 <여행>? 내가 무슨 악몽을 꾸고 있는 건가?
뭔가 한순간에 긴장이 풀려 창밖을 보니, 더 예상치 못한 풍경들이 펼쳐졌다.
대학교 캠퍼스 같은 건물들 사이로 뻗은 도로, 교차로에 서있는 멋진 석상, 길을 따라 흩날리는 벚꽃들.
지금도 생각하건대, 만약 누군가 벚꽃 여행지로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물으면, 공군 교육사라고 답하리라.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버스에서 내리자, 이번에는 1열로 서서 입영 절차를 진행하란다.
PCR 검사, 서류 작성, 이동, 핸드폰 제출... 무서운 조교들의 안내를 받으며 절차를 마무리하니 나는 우리 아버지랑 연배가 비슷할 것 같은 건물에 앉아있었다.
기다란 평상, 녹이 슨 관물함, 쥐구멍.. 그래 이게 군대지.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비슷한 사람들(외적으로나, 심적으로나)이 불편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그렇게 2시간, 수십 분에 한 명씩 방에 새로운 인원이 추가되는 것 외에 아무런 지시가 없자, 내 옆자리에 있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
"우리 이대로 앉아만 있는 걸까요? 이따 자기소개 시간이라도 주겠죠..?"
맙소사. 자기소개 시간이라니. 과연 그런 걸 줄까?
내 앞에 있던 사람이 대꾸했다.
"기다리지 말고 우리 통성명이나 하죠. 저는 송ㅇㅇ이에요. 23살입니다."
오. 동생인 줄 알았는데 형이었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 자기소개 시간이 시작되었고, 나도 어색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백지오입니다. 22살이고, 서울에서 왔어요. 전공은 컴퓨터공학이에요."
소개를 하고 각자 군대에서 느낀 첫인상을 얘기하는데, 옆자리에 있던 형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지오씨는 손에 무슨 번호 안 적어왔어요? 입구에서 적으라 하던데..."
헉. 그러고 보니 다들 손에 뭘 적고 있던데, 나만 없다.
아무래도 아까 핸드폰을 내고 건물로 들어오기 전에 뭘 더 했어야 하나 보다.
어떡할지 고민하다, 누군가 물어볼 사람이라도 찾아볼 생각으로 복도로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복도 중앙에서 뭔가 작업하던 조교가 나를 발견하고, 이내 내쪽으로 걸어왔다.
"왜 나왔습니까? 뭐 문제 있습니까?"
분명 존댓말인데 뭔가 무섭다. 나보다 키도 한 20cm는 작아 보이는데...
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에 번호 적는 걸 놓친 내 잘못이고, 숨기다 나중에 문제 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용기를 냈다.
"저... 소대 번호? 가 누락된 것 같습니다."
조교는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노려봤다. 분명 날 올려다보는데, 뭔가 들개나 늑대와 눈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하... 정신 차려라 쫌!!!!"
이게 글로는 표현이 안되는데, 진짜 사자후란게 있다면 그런 느낌이었다.
조교는 무전기로 누군가를 부르더니, 내 소대 번호를 알아내어 알려줬다.
그 이후로 "정신 차려라 좀"은 우리 소대의 기념비적인 첫 유행어가 되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추스르고 자리에 와 앉으니, 내 앞자리에 있던 형님이 나보다 더 쫄은 눈치였다.
주변에서는 나보고 괜찮냐고 물어왔지만, 나는 왜인지 내 앞에 그 형님을 보고 긴장이 풀어졌다.
그래. 이게 군대구나. 그럼 한 번 이겨내 보자.
내 군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3월 16일
"기상, 기상. 4대대 전 훈련병은 기상 후 생활관 밖으로 오와 열을 맞추어 집합할 것"
아침 6시에 기상하는 게 얼마만인지.
기상 방송을 듣고 생활관 앞에 모여 줄을 서자, 대망의 군대식 인원 파악을 진행했다.
인원 파악이 완료되자 조교들은 우리를 식당으로 인솔했다.
우리는 코로나 예방을 위해 1주간 식당에서 밥을 싸다가 먹었는데, 생활관에서 식당으로 가는 길은 걸어서 10분 정도 걸렸다.
언덕을 따라 식당으로 가는 길은 쌀쌀하면서도 새 지저귀는 소리, 어스름한 하늘, 멋들어진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어서, 아침 산책을 하는 기분으로 나쁘지 않았다.
3월 17일
내가 소속된 3중대 1 소대장님께서 오셔서 우리와 인사를 나누고, 궁금했던 점에 대해 질의응답을 받으셨다.
격리는 언제까지 계속되는지, 훈련은 언제 시작되는지, 훈련 강도는 어떤지 등 많은 질문이 오갔는데, 소대장님은 친절히 응답하시다가 인사를 나누고 갔다.
3월 18일
같은 방을 쓰는 호실원들과 많이 친해졌다. 코로나 예방 차원에서 같은 지역 사람들끼리 같은 소대에 배정되었는데, 그래서 비슷한 배경의 사람이 많았다.
서울대 컴공과 송 형, 공기업에 다니다 온 귀여운 동생 신ㅇㅇ, 교양 있는 사람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던 성 형...
공군에 똑똑한 사람이 많이 온다더니, 과연 그 많은 사람 중에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사고가 터졌다.
호실원 한 명이 마스크를 안 쓰고 있다가 조교에게 걸렸다.
조교가 째려보는데 "봐주세요 ㅎㅎ"하는 표정으로 살짝 웃어 보이더니 마스크를 썼다.
결과적으로 우리 호실은 신나게 동기부여를 받았다.
"정신 차려라 좀" 이후로 우리 소대에 또 다른 추억이 생긴 순간이었다.
3월 19일
보급품을 받았다.
3월 20일
군대에 브런치라는 게 있는 걸 알고 있는가?
한 달에 몇 번, 주말에는 아침 겸 점심을 양식으로 준단다. 세상에... 공장에서 만든 크로와상과 급식 스파게티가 그렇게 맛있던 건 처음이었다.
이날은 효전화도 처음으로 했다.
부모님한테만 전화하라는데, 다들 몰래 친구나 연인에게도 전화를 했다.
시간이 5분밖에 없어서 손가락이 안 보이게 전화를 누르고, 제발 1초라도 더 빨리 받으라며 기도했다.
1주일 만에 듣는 사랑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이곳에서, 내가 잊고 있던 나를 찾는 기분이었다.
3월 21일, 22일: 격리 중이라 운동만 줄창 했다.
3월 23일: 마침내 훈련을 진행할 신관으로 이사했다. 보급품도 받고 할 일이 많아 너무 바빴다.
3월 24일
드디어 훈련 날이다. 전날 밤 첫 불침번도 섰다.
밤중에 불 꺼진 건물을 지키려니 무서움이 없는 편인 나도 약간 등골이 서늘했다.
기상하고 5분 만에 옷을 갖춰 입고 연병장에 나갔다.
구령에 맞춰 준비운동을 하고, 1km 뜀걸음(러닝)을 했다.
생각보다 힘들기보다 상쾌했다.
오후에는 총기를 받았다.
매체에서나 보던 K2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마침내 군인이 된 기분이었다.
3월 25일
아침에 급양 지원을 나갔다.
밥을 먹고 식판을 반납하는 퇴식구에서 근무하는데, 사람들이 식판을 마구잡이로 던지고 가는 것이 어찌나 화가 나던지.
일과 시간에는 총기 이론을 배우고, 사격 자세 실습을 했다.
모래 바닥에서 엎드려 쏴 자세를 연습하는데, 바닥에 괸 팔꿈치로 자갈이 파고들어 매우 힘들었다.
그럼에도 총기를 제대로 된 자세로 조준하고 사격에 임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보람찼다.
총기 이론을 가르쳐 준 교관님이 군대에서도 모든 일에 보람을 느끼려고 노력해 보라시던데, 그 뜻을 알 것도 같았다.
3월 26일
화생방 이론과 제식을 배웠다.
화생방 이론은 재밌었지만, 실제 상황이 된다고 가정하면 끔찍했다.
제식은 경례나 행진 자세 등, 군인의 행동 양식인데, 배우고 있으니 뭔가 멋지단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2km 전투 뜀걸음을 했다.
무거운 총기를 들고 발걸음을 맞춰 달리는 것은 힘들었지만, 동기들과 군가를 부르며 달리는 게 즐거웠다.
3월 27일
비가 왔지만 훈련을 쉬지는 않았다.
쫄딱 젖은 채로 사격술 연습을 하는데, 어느 순간 호흡이 안정되고 팔꿈치도 별로 아프지 않았다.
점차 군인이 되는 기분이다. 어서 실탄 사격을 해보고 싶다.
3월 29일
처음으로 인편(인터넷 편지)을 받았다.
소대에서 대표로 병사 한 명이 받아서, 생활관 중앙에서 이름을 부르며 나눠줬다.
내 이름을 불릴 때마다 누가 보낸 편지일지 설렘을 품고 달려가 편지를 받았고, 다른 이의 이름이 불리면 모두 박수로 축하해줬다.
예상치 못하게도 친구들이 9장이나 편지를 보내줬다.
내가 친구들 잘 사귀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도 친구들 군대 가면 편지 좀 써줄걸 싶었다.
3월 30일
군대에 와서 손글씨를 참 많이 쓴다.
일기, 편지, 노트 필기... 손이 아프지만 글쓰기는 재미있다.
오늘부터 중대 기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중대 기는 약간 무겁지만, 우리 중대를 대표한다니 뿌듯하다.
근데 이거 들고 달리기 해야 한 데서 좀 걱정이다.
3월 31일
전투 뜀걸음을 했다. 체력이 늘긴 늘었는지 깃발 들고 2km 뛰는 게 어렵지 않았다.
사실 원래 중대 근무자를 하려 했는데, 마지막 면접에서 떨어졌다.
나 대신 중대 근무를 서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뒤숭숭했다.
고등학교 때 회장 선거에 나갔던 추억이 떠올랐다.
4월 1일
오늘은 훈련소의 꽃, 영점 사격과 CS 체험을 했다.
영점 사격은 탄착점이 약간 위아래로 퍼졌으나 안정적으로 쐈다.
CS... 진짜 방독면의 소중함을 느꼈다.
화생방 훈련장 앞에서 우리 차례를 기다리는데, 차례가 많이 남았을 때는 체험하고 나오는 앞 소대를 보며 웃었다.
그런데 점점 우리 차례가 다가오자, 앞 소대들이 들어가고 나올 때 조금씩 새어 나오는 CS가스를 맡기만 해도 코가 맵고 기침이 나왔다.
마침내 우리 소대 차례가 왔다.
앞사람 어깨에 손을 얹고, "3중대 1소대 파이팅!!"을 외치며 들어갔다.
CS 가스에 대해 많은 리뷰가 있지만 나는 이렇게 표현하겠다.
눈, 코, 입에 끓는 물을 들이붓는 기분이다.
그래도 평생에 한 번은 할만한 경험이었다.
4월 2일
자살 예방 교육을 받았다.
자살 예방 교육이 내 자살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자살 위험자들을 지켜주는 교육이란 걸 아는가?
놀랍도록 유익하고 좋은 교육이었다.
오후엔 각개전투 훈련을 했다.
진짜 힘들었다. 하필 비까지 와서, 진흙탕을 구르니 진짜 전투를 벌이는 기분이었다.
근데 나도 군인이 됐는지, 힘든 만큼 보람찼다.
4월 5일
마침내 유격훈련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든 생각은 "유격하기엔 너무 예쁜 날씨다."였다.
그런데 어쩌겠나. 할 건 해야지.
오전 내내 유격 체조를 하며 온 몸을 부숴놨다.
그야말로 정신줄 놓고 했다.
중간부터는 틀려서 추가 동기부여를 받아도 그냥 웃으면서 했다.
유격 랜드라 불리는 장애물 돌파 코스는 재밌었다.
그런데 하다가 외줄에서 떨어져서, 팔이 많이 쓸렸다.
4월 6일
화생방 보호의 착용법과 CPR을 배웠다.
CPR은 입대 전에도 여러 차례 배웠지만, 배울 때마가 집중하게 된다.
일과 후에는 최근 친해진 동생인 성찬이와 운동을 했다.
나보다 어린데 능력도 좋고, 성격이나 의지가 대단한 친구다.
군대에 와서도 인복이 좋다는 걸 느낀다.
(이 이후로는 훈련 일정이 거의 마무리되어서 일기가 없다.)
오랜만에 훈련 일지를 펴 읽어보았다.
19개월. 대략 600일 전의 나에게서, 지금의 나와 비슷한 모습들과, 지금의 나와 다른 모습들을 본다.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한 전투복과 "필승"이라는 경례가 낯설었던 그때.
그럼에도 내가 군인이 적성에 맞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고, 즐거웠던 그때.
오기 전에는 막연하기만 했던 군대와 안보라는 단어가, 이제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할 정도로 익숙하다.
오기 전에 예상했던 어려움,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 모두 많았으나,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과 행복이 더욱 많았다.
무엇보다, 훈련 일지 마지막 장에 적힌 내 말처럼, 군대에 와서도 인복이 좋다는 것을 느낀다.
이제 전역까지 40일을 앞두고,
내 군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군대 얘기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께는 사과드린다.
그래도, 한번 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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