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오늘 어떤 기분이신가요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간식을 먹고, 컴퓨터를 켠다.
언젠가 내가 하기로 결정한, 수일에서 수십 일째 계속하고 있지만, 막상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 일을 하고,
집중력이 떨어질 때쯤 점심을 먹는다.
캘린더를 보니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라, 조금 더 일하다가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일정이 있는 것 보니 벌써 주말이구나,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아찔하다.
내가 나라는 것을 깨닫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 난 이미 학생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고
때로는 6시에, 때로는 8시에, 때로는 10시 넘어 집에 돌아왔다.
스무 살이 되고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가도 혼나지 않게 되었을 때,
군복을 입고 집이 아니라 부대로 복귀하게 되었을 때,
때때로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뀐 것만 같은 고양감 혹은 당혹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지만,
이내 언젠가 지나친 듯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삶이란 결국 이토록 단순하구나 싶은 것이었다.
그렇게 물 흐르듯 살다가, 이따금 어김없이 찾아오는 졸음이 견딜 수 없게 억울한 날,
필사적으로 오늘은 여느 날과 다르다고, 토해내듯 골라낸 언어로 흔적을 남긴다.
언젠가 또 이런 날이 오면, 그날의 당신이 외롭지 않도록.
당신의 오늘도 여느 오늘 중 하나일 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당신의 오늘은 지금까지의 오늘과 다르다고, 너는 멈추지 않고 저항하고 있다고.
힘들거나 즐거운 정도가 유난한 날, 저는 글을 씁니다.
저만 볼 수 있는 블로그에, 날짜와 때때로 간단한 제목을 지어서 일기를 쓰기도 하고, 편지를 쓰기도 하고, 자서전도 씁니다.
그렇게 20살부터 쓴 글이 한 30편 됩니다.
새로운 글을 한 편 쓰고 나면, 자연스럽게 나머지 글들도 읽습니다.
읽다 보면 어떤 글을 최근에 쓴 글인데도 "내가 이런 생각을 했나"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 얘기 같고, 어떤 글은 몇 년이 지나도 나답기도 하고, 오히려 나보다 어른스럽기도 합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과거의 제 모습들을 들여다보다 보면, 무한히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던 삶에 방향과 흐름이 보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가 뚜렷해집니다.
아마 이 글들만큼 저를 잘 드러내는 글들은 없을 것이고, 앞으로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살아있는 동안 누군가에게 공개할만한 것은 못 되어서, 혹시 자식을 갖게 된다면 내가 죽고 출판해 달라 부탁해보고 싶습니다.
아무튼, 오늘도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하루로 남기고 싶지 않은 날.
글을 쓰고 보니, 어째서인가 이 글은 이곳에 올리고 싶어 공개합니다.
이전에는 삶이 혼란스러울 때, 고민이 많을 때 니체를 권하곤 했는데요.
이제는 글쓰기를 권해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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