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회고] 공군 SW 개발병의 1년을 돌아보며
2021년이 끝나간다.
올해는 어째서인지 돌아보기 힘들 정도로 길었던 것 같기도 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것 같기도 하다.
한 해를 돌아보며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내가 수능을 봤던 해에도 그랬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2018년 3월, 늦게 내린 눈을 밟으며 처음 입시 학원에 들어섰던 날.
200일, 100일, 10일... 수능까지의 날짜를 세며 공부할 시간이 아직 있다고 안도하면서도 남은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져 힘들었던 날들.
11월 15일, 생각보다 별다른 감흥없이 시험을 보고, 집에 와서 8개월만의 어색한 자유를 느낀 그 날.
뒤를 돌아보니 그런 기분이었다.
내 꽃같은 청춘의 1년이 너무나도 짧은 순간에 스쳐지나간 듯한 느낌.
그럼에도 기억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너무 길었고 힘들었던 느낌.
군대에서 보낸 첫 1년은, 실로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힘들었고, 길었고, 솔직히 빨리 지나가길 바랬지만,
즐거운 일도 있었고, 낭만도 있었으며, 더 잘하지 못해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솔직히 쓰지말까 생각도 했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것은, 분명 힘들고 만족스럽지만은 않은 한 해였지만 잊고 싶은 기억만 있지는 않았던 것과, 언젠가 이 순간들도 2018년의 내 기억처럼 쓴웃음 지으며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이 되지 않을까 하는 나의 희망 때문이다.
그럼 이만 서론은 줄이고, 시작해보자.
입대 전
입대 전을 회상하자니 정말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지금까지 연초를 회상하면서 이 정도로 멀게 느껴진 적이 있었나 싶다.
마치 5년쯤 전의 자신이 지금의 나와 같은 인물이라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입대 전의 나는 뭔가 먼 과거의 나같이 느껴진다.
올해 초, 나의 목표는 입대에 앞서 "군대에 가기 전의 나"를 기억에 아로새기는 것이었다.
전역한 후의 내가 자신감이 떨어지고 힘들 때, 이 때의 나의 기록을 보고 "내가 이런 사람이었지."하고 기운을 내길 바랐다.
결과적으로 나는 남들 다 노는 입대 2주전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대회에 나가고, 강연에 과외까지 했다.
SW 중심대학 연합 해커톤
2020년 세종대학교 해커톤에서 수상한 것을 계기로, 국내 SW 중심대학 연합 해커톤에 학교 대표로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입대 2개월 전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시간을 허투루 쓸 게 아니라 꼭 입상하고 싶었다.
해커톤은 온라인으로 진행됐는데, 자신이 원래 하던 팀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해커톤 참가자들끼리 팀을 즉석으로 만들어 진행해야 했다.
각 참가자는 자신의 프로필을 간단히 꾸미고 팀장이 되기를 희망하는 참가자가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다른 참가자는 해당 아이디어에 참가하는 식으로 팀빌딩이 진행됐다.
이런 식의 해커톤은 처음이라 조금 난처했지만, 빠르게 전략을 세웠다.
1. 나는 아이디어 제안에는 소질이 없어 다른 아이디어에 합류해야 한다.
2. 해커톤은 아이디어가 수상에 매우 중요하므로, 팀을 잘 골라야만 입상할 수 있다.
3. 나는 아이디어 구체화, 서비스 개발, UX 디자인 등에는 자신이 있으니 내가 발전시킬 수 있을 법한 아이디어를 고른다.
4. 더불어, 나는 해커톤에 주로 활용되는 웹, 앱 개발 능력은 비교적 떨어지고 AI에 강점이 있으므로 AI 개발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아이디어와 팀을 선택한다.
이런 계획 하에 당시 유행하던 원격 스터디 모임 관련 아이디어에 합류한 나는 포즈 인식(Pose Estimation) 기술을 활용하여, 스터디 집중도를 기록해 게임처럼 보여주자는 제안을 했다.
화상 통화 기반의 온라인 스터디 환경을 베이스로, Pose Estimation을 통해 스터디 참여자가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지, 혹은 부재중인지를 기록해 스터디원들간 공유하고, 뱃지를 통해 자랑할 수 있게 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물속에 잠기 듯 스터디에 빠져들어 집중할 수 있다는 의미의 다이브 인(Dive in)으로 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메타버스 스터디 플렛폼을 만든 것이다. 아이템 선정을 정말 잘했다.
2박 3일간 쪽잠을 자며 개발한 끝에 우리 팀은 1등상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사실 개발이 반쯤 완료된 시점부터, 이 프로젝트가 수상감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2박 3일은 해커톤치고 넉넉한 시간이다. 그럼에도 놀거나 게을리 하는 팀원이 한 명도 없었다.
농담처럼 "해커톤은 발표만 잘 하면 돼."라고 하면서도 다들 키보드에서 손을 때지 않았고, 아이템은 처음부터 방향이 잘 잡힌 덕도 있지만, 무언가 부족한 것 같은 부분이 있으면 바로바로 좋은 아이디어가 나와 개선되고, 발전했다.
팀장이었던 영재 형은 팀장의 덕목인 꼼꼼함, 언변과 센스는 물론 넓은 시야와 순발력까지 갖춰 완벽에 가까운 리더십을 보여줬다.
웹 개발을 맡은 병규 형과 지희 누나는 개발 능력과 꼼꼼함, 훌륭한 소통능력을 갖췄고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장인정신을 갖고 있었다. 사실 해커톤에선 개발 시간의 한계상 백앤드 구현이나 최적화 등을 스킵하거나 어느정도 대충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밤을 세워가며 당장 출시해도 될 수준으로 높은 기준으로 개발을 했다. 놀라웠다.
UX / UI 디자인을 맡은 예준 누나도 훌륭했다. 예준 누나가 일하는 걸 보면 실력으로 말한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회의에서 말로만 언급된 화면, 기능을 완벽하게 파악해 예쁘게 현실로 만들어줬고, 덕분에 우리 팀원들은 각자 집중해야할 부분에만 집중하며 빠르게 개발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내가 이런 완벽한 팀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 자리에서 다시금 내 삶에서 가장 강렬했던 협업 경험을 만들어준 FWM 팀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함께해서 영광이었다."는 말이 이토록 어울리는 팀은 처음이었다.
100명 앞에서 실시간 강의를 해보다.
입대를 앞두고, 제주코딩베이스캠프에서 온라인 강연을 기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식 공유를 모토로 개발과 관련된 자유 주제로 강연자를 모집하고 있었는데, 코딩 교육 기관 중에 규모가 꽤나 있는 곳에서 진행하는 행사여서 인기가 상당했다.
마침 입대전에 "나만 알기 아쉬운 딥러닝" 강의를 제대로 다듬고 싶었던 차라, 좋은 기회다 싶어 바로 강연 제안을 했고 감사하게도 기회를 얻게 되었다.
기존 30분씩 6강으로 구성된 "나만 알기 아쉬운 딥러닝" 강의를 1~2 시간 안에 진행할 수 있도록 다듬었다.
수학적/컴퓨터 공학적 배경 지식 없이도 이해하기 쉬운 기존의 설명들을 유지하면서, 짧은 시간안에 딥러닝을 이해하고 체험해 볼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너무 가벼운 내용은 아니도록 적절히 조절했다.
준비는 잘 하였으나 실시간으로 100여명의 청중 앞에서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환경 설정 등에 약간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행사를 주관한 이호준님의 적극적인 도움덕에 강의는 잘 진행되었고, 청중들께 "딥러닝에 막연한 관심만 있었는데 덕분에 제대로 첫 발을 디딜 수 있었다"라는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무언가 발표나 강의를 진행하고, 내가 전하고자 한 내용이 잘 전달되었을때의 짜릿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강의를 진행한 2시간 남짓의 시간은 강의를 진행한 나에게 있어서도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다.
당시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신 제주코딩베이스캠프, 위니브의 이호준 대표님께 큰 감사를 드린다.
입대
이렇게 미필자 백지오의 마지막 끝자락까지 불태우고 마침내 3월 15일, 입대했다.
흔히들 입대 전 식사는 뭘 먹어도 맛이 안 느껴진다고 하지만, 난 진주 돼지고기 맛집을 찾아가 정말 맛있게 먹었다.
미련은 없었다.
이제 지금까지의 나는 끝난다.
앞으로 적어도 한두달은 사회와 단절된 곳에 갇혀 있을 것이고, 그 이후의 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였고, 후회없이 마지막까지 달리다가,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다.
공군 교육사령부라고 적힌 입구 앞에서 함께 와준 여자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다른 사람들 무리에 섞여 부대로 들어갔다.
부대 입구에서 훈련단까지 이동하는 버스에서는 볼빨간사춘기의 여행이 나왔다.
대학 새내기 시절, 등교길에 듣던 노래였다.
뭔가 운명적인 느낌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당시 내 옆자리에 있던 훈련소 동기는 미친 줄 알았다고 하더라.)
훈련소에서
나는 시설이 낙후되었지만 조교님들이 인간적(?)이라는 소문이 있던 신병4대대로 배치됐다.
첫 1주일은 코로나로 인한 관찰기간이어서, 아무런 훈련 없이 생활관에서 대기하다가 밥먹고 자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나와 같은 방을 쓴 10여명의 동기들은 다들 생각이 깊고 성실했다.
예습하라고 주어진 기본군사지식 책자 내용을 서로 질문하며 공부도 하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훈련에 대비해 간단한 운동을 다같이 하기도 했다.
저녁에는 다양한 사회 얘기를 나눴는데, 동기가 다양한 만큼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수준높게 나눌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 뮤지컬, 과학 얘기를 하거나, 지리학과 친구로부터 세계의 정치적 특성 강의를 듣기도 하고, 동성 친구들끼리 자기 전에는 빠질 수 없는 사랑 얘기도 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기본군사훈련 책자에는 경례 하는 법, 군복 입는 법 등 기초적인 지식부터 공군의 역사 등 군인이 되기에 필요한 모든 지식이 담겨 있었다.
공군의 역사와 군인 정신을 배우니, 군인이 된다는 것이 싫게많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천성이 무르고 몸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군인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외로 군인의 덕목과 역사에는 공감가는 것이 많았고, 해보니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중대 근무자에 지원했으나 아쉽게 마지막 2인에서 떨어지고, 대신 중대 기수로 활동하며 훈련에 최선을 다해 임했다.
덕분이었을까, 훈련소에서 좋은 친구를 몇 명 사귈 수 있었다.
성적도 1500여 명중에 200등으로 나쁘지 않게 챙겼다.
자대 배치, 군생활 시작
짧은 특기 학교 교육 기간을 거쳐, 마침내 내가 2년여의 군생활을 함께할 자대로 왔다.
원래 우리 부대는 동기 생활관(근접한 시기에 입대한 사람들끼리 한 방을 쓰는 것)을 운영하지만, 격리 구역 확보 등의 문제로 임시로 다른 생활관에 혼자 들어가 살게 되었다.
훈련을 막 마치고 돌아온 이등병이었던 나는 신병 인솔을 맡은 선임병의 안내에 따라 13생활관이라 적힌 곳으로 들어갔다.
아직 다들 근무지에서 돌아오지 않아서 생활관에는 나밖에 없었는데, 내 옆자리 관물함에 걸린 군복에 병장 계급장이 붙어 있길래 깜짝 놀랐다.
나보다 적어도 1년씩은 군생활을 더 한 선임들이 있는 생활관에 온 것이다.
훈련소에서 날 괴롭히던 조교들도 고작 3~10개월 선임들이었는데...
신입 사원이 임원 회의실도 아니고, 임원의 아파트에 들어간 기분이랄까.
아찔했다. 군대에 먼저 간 친구들, 형들, 어른들께 들었던 부조리나 구타 문화 등이 머리 속에 스쳤다.
아무도 없는 선임 생활관에서 멀뚱멀뚱 앉아 있다보니 선임들이 사무실에서 돌아왔다.
한 두명씩 문을 열고 들어오며 날 보고는 "아 왔구나."하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이름이나 학교, 나이 같은 소소한 것들을 물어봤다.
나는 선임들이 앉는 자리를 잘 봐두고, 수첩에 자리와 이름을 메모했다.
한동안 같은 방에 살 선임들의 이름은 최대한 빨리 외우자는 생각이었다.
창가쪽에 사는 곽 병장은 핸드드립 커피를 좋아했다.
나도 커피를 내린다고 하자 나에게 커피를 자주 나눠주었다. 그는 나와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커피를 내렸는데, 커피의 향을 굉장히 잘 살렸다.
특히 아이스를 잘 내려서, 아이스 커피를 잘 못하던 나는 그에게 아이스 커피 드립법을 배웠다.
왼쪽 2번째 자리에 사는 이 병장은 기타와 랩, 책을 좋아하고, 나랑 같은 학교에 다녔다.
매일 저녁, 자신의 기타를 튕겼는데 내가 보기에 꽤 멋졌다. 그가 빌려준 책 "노르웨이의 숲"에 한동안 빠져서 여기저기 추천하고 다니기도 했다.
어느정도 친해진 이후에는 노래방에 같이 다니며 랩을 했는데, 취향이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왼쪽 3번째 자리에 사는 김 병장님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공군 굿즈가 많았다.
나랑 자리가 가깝기도 하고 해서, 휴가 일정 탓에 많이 같이 있지 못했는데도 날 잘 챙겨줬다.
그가 전역하면서 남겨준 물품들은 내가 지금도 잘 쓰고 있다.
우측 창가 자리의 박 병장은 내가 본 사람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재밌는 사람이었다.
항상 웃고, 다른 사람을 웃게 해줘서 멋진 사람이었다. 나랑 달리 굉장히 텐션이 높은 사람인데도 같이 있으면 편하고 재밌는,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우측 2번째 자리의 김 병장님은 부대에 발이 넓은 사람이었다. 성격도 밝고 재밌어서 함께 지내면서 재밌었던 사람이다.
신병인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많은 도움을 주셔서, 내가 더 빨리 잘 적응하지 않았나 싶다.
우측 3번째 자리의 이 병장은 멋진 사람이다. 한마디로 이렇게밖에 정리가 안된다.
내가 본 사람 중에 손에 꼽도록 솔직하고, 성실하고, 바른 사람이었다. 고생 참 많이 했는데, 그걸 다 해내고 갔다. 놀랍다.
우측 4번째 자리의 송 병장님은 공학에 진심인, 재밌는 사람이었다.
내가 전입온 날 나에게 "클린 코드"책을 주면서 완독하라 한 게 기억에 남는다. 가끔 그와 기술, 미래에 대한 얘기를 나눴었는데 세상에 정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대화가 재밌는 사람이었다.
지식의 깊이가 깊은 사람과 대화하는 건 재밌다. 그걸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운 좋게도, 나와 2개월 정도를 함께한 선임들은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다들 나를 후임, 짬찌(짬 찌끄래기, 후임을 낮춰부르는 말)가 아니라 사람으로 따뜻하게 대해줬다.
내 군생활의 시작과 2021년을 밝게 채워준, 지금은 전역한 13생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정말 큰 감사를 드린다. 여러분의 계급이 아닌, 각자의 모습, 사람됨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13생활관에 있어 즐거웠고, 행복했다.
군대에서도 해커톤
내 군생활 목표 중 하나는 "군대에서만 할 수 있는 걸 해보자"이다.
군대에서만 가능한 것, "공군참모총장상"과 "국방부장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밖에서도 가능하긴 하지만 안에서 따면 의미가 다르다.)
국방부에서 주최하는 전군 온라인 SW 교육자 대상 해커톤에 참가했다.
코딩 테스트와 아이템 기획서로 걸러진 1차 참가자는 약 100명, 이번 해커톤도 그들 간에 자율적으로 팀을 구성하고 진행하는 해커톤이었다.
지난 해커톤처럼 이번에도, 내 능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팀에 합류했다.
공군 3명과 육군 1명으로 구성된 팀이 완성되고, 약 2개월간 일과 후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의 개발을 진행했다.
군대 안에서 개발을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결국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개발에 속도가 붙었고, 기간 내에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
(당시 깃허브)
이번 프로젝트는 군 생활 중 자신의 기록(수상, 활동 내역, 경력 등)을 SNS 형태로 남기고, 이를 취업에 연계할 수 있는 플렛폼이었다.
나는 텍스트 요약 AI API, 맞춤법 검사 API 등을 개발했는데, 사실 이전 해커톤에 비해 AI 비중이 크진 않아서 조금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실력이 매우 뛰어난 팀원들과 멘토님을 만난 덕에, 깃 workflow에 완전히 익숙해지고, 전문적인 협업, 오픈소스 기여 방법 등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한동안 사무실에서 돌아오면 바로 개발에 몰두하는 노력끝에 이번에도 어렴풋이 수상권이라는 확신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상을 탔다.
고생한 기간이 길어서인지, 군대에서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인지 상이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짧지 않은 시간, 국방을 위해 각자 부대에서 노력하면서도 힘든 환경 속에서 함께 값진 경험을 만들어준 팀원분들께 감사한다.
군인 백지오
20년을 학생, 민간인으로 살다가 군대에 오고, 첫 해가 지나가고 있다.
군생활의 45% 정도를 보내면서 정말 다양한 순간들이 있었다.
특히 휴가 중에 군인으로써 받았던 호의들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휴가 중이래봐야 내가 군복을 입고 "군인 티"를 내는 건 휴가를 나오는 날과 복귀하는 날 뿐임에도, 많은 분들이 그 짧은 틈에 호의를 배풀어주셨다.
카페에서 무료로 사이즈업을 해준 알바 분, 자기 아들도 군인이라시며 막 구운 빵을 하나 더 넣어주시던 빵집 아주머니, 지하철에서 고생이 많다며 좋은 말씀 해주신 어르신까지...
놀랍도록 많은 호의를 받았고, 그때마다 큰 감동과 위안을 받았다.
그런 순간이면 내가 아주 헛된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물론 군생활 중에 좋은 때만 있지는 않았다.
사실 힘든 순간이 4,5번 있을 떄마다 좋은 일이 한 번 있어 버텨왔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작은 호의들이 모여, 내 복무를 자랑스럽게 만들어주고 있기에, 사회에서 날 따뜻하게 맞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내가 힘들었던 순간들에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준 13생활관 선임들과 14생활관 친구들, 내 선생님이었으면 좋겠는 강 병장님, 닮고 싶은 사람인 우 병장, 최 상병, 동료로 지낼 수 있어 영광인 허 일병, 김 일병, 이 일병 이외에 나를 "병사 1 명"이 아닌 한명의 동료이자 친구로 대해준 모든 선후임, 동기, 간부님들께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언제나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내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친구에게도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드린다.
여러분 덕분에 길고 힘든 군생활도 보람차고 즐겁게, 웃음을 잃지 않고 해나가고 있다.
사회와 떨어져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2021년만큼 내가, 우리가 사회와 단절되어 살아온 해가 있을까?
내가 군대에 있어 그렇기도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와의 싸움과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우리는 어느 때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 걱정이 앞섰다.
군대에서 보낸 1년, 쓸 내용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글을 마무리하며 보니 이번 글은 내가 썼던 회고 중 단연 긴 분량이 되었다.
이마저도 내용을 꽤 많이 쳐내고 정리한 것이다.
비록 글에 다 담지는 못 했지만, 휴가 중에, 혹은 SNS를 통하거나 연락으로나마 내게 행복을 주신 분들이 많다.
떨어져있었기에 소중함을 깨달은 것들이 새삼 많다.
2021년은 내게 많은 것을 잃은 해였지만, 많은 것을 얻은 해이기도 했다.
글을 쓰기 전, 잃은 것들과 못한 것들 생각에 안 좋은 감정에 묻혀있던 나는 지금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이제 2022년을 힘차게 마주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글은 읽는 이가 있어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여러분이 이 글의 마침표를 찍어주신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해주신 여러분께도 큰 감사를 드린다.
2021년 잘 마무리 하시고, 복 넘치는 새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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