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 [2020년 회고]
안녕하세요. 백지오입니다. 21살이에요.
세상에, 이제 22살이라고? 믿기지가 않는다. 너무 믿기지가 않아서 8일이나 멍 때리다가, 새해가 시작된 지 한참 후에 뒷북으로 회고를 쓰고 있다.
코로나 19 때문에 2020년이 사라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름대로 2020년에도 많은 것들을 이뤄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벌써 22살이라는 건 어색하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살이에염! 하면서 발랄하게 인사하고 다녔는데, 이제 22살이라니.
어디 가서 21살이라고 자기소개한 게 몇 번 없어서 그런가.
암튼 21살 리뷰, 회고, 뭐라고 부르든, 시작한다.
1년 차 블로거가 되었다.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블로그의 첫 글은 2019년 회고이다.
페이스북에서 다른 개발자들이 블로그에 회고를 남기는 것을 보고 재밌을 것 같아 시작한 블로그를 운영한 지 만 1년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딥러닝 강의 글 등으로 시작한 블로그에서 점차 이런저런 글을 적어가며 블로그를 다듬고, 지금은 나름 블로그의 방향성을 잡은 것 같다.
학기 중에는 내가 수강한 과목들의 강의노트가 올라오고 방학에는 내가 공부한 것들, 내가 아는 것들이 올라온다. 때때로 한 학기의 리뷰나 계획 등도 올라오는데, 이 글들이 은근히 인기가 좋다.
블로그를 운영하며, 여러 사람들로부터 감사인사와 연락을 받았다.
신기하게도 강의노트가 아니라 내 회고나 계획 글들이 도움이 되었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난 그저 내가 한 생각들을 정리해놓은 것뿐이데, 이런 글들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영감이나 도움이 된다니 기뻤다.
지금 쓰는 이 글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계획이 있었던 첫 해
누구나 매년 한해의 계획을 세운다. 나도 그랬다.
물론 세우면서도 안 지킬 계획임을 알았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계획이라는 이름의 목적을 정하고, 이를 글로 써서 블로그에 올렸다.
나는 2020년을 전문성의 해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몇 가지 세부 계획을 세웠다.
코로나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변수가 많았던 올해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힘들거나 혼란스러운 순간마다 찾아보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계획을 100%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난 올해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몇 건 수행했고, 논문을 많이 읽었으며, 내 진로에 대해 명확한 통찰을 얻었고,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을 높은 성적을 얻었다.
올 한 해를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계획은 목표가 아니라 목표를 위한 이정표라는 것이다.
1월에 하루를 투자하여 만든 글 한편이, 내가 흔들릴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때, 목표가 흐릿해질 때, 더 이상 노력하기 힘들 것 같을 때마다 위 글을 읽고 회복하고, 진정하고, 해냈다.
2021년에도 계획을 세우자.
코로나와 오픈소스
항상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기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정작 깃허브를 과제 코드 저장용 외의 목적으로 사용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던 2월의 어느 날, 코로나 19 (당시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불린) 상황판을 만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서 보게 되었고, 갑작스럽게 내 인생 첫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파이썬을 이용해 전 세계의 코로나 현황을 크롤링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당시에는 아직 코로나 확진자 현황 등이 잘 공유되지 않았던 시점이라, 내가 개발한 프로그램은 월드 오 미터를 포함한 몇 사이트를 크롤링하여 voting 방법으로 정확성을 보완하는 방법을 취했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위 프로그램 이외에도 해당 프로젝트의 확진자 시각화 등에도 기여하며 내 인생 처음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코로나맵 프로젝트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일은 단연 내가 짠 크롤러 코드를 누군가 리펙토링 해줬을 때이다.
난 내 코드가 굉장히 적절하고 깔끔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한양대 소프트과의 모 개발자님이 고친 내 코드를 보고 그야말로 하룻강아지가 된 기분이었다.
자세하면서도 깔끔한 주석, 직관적인 변수 이름, 낭비되지 않는 메모리와 가독성이 높으면서도 불필요하게 길지 않은 코드... 나와 같은 기능을 하는 코드임에도 그분이 작성한 코드는 내 코드와 다른 경지에 있더라.
코로나맵 프로젝트를 통해 오픈소스 기여의 보람을 배움과 동시에, 내 실력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NYU 딥러닝 번역 프로젝트
3월에는 뉴욕대학교의 딥러닝 강의 번역 프로젝트에 기여했다. 그 유명한 얀 르쿤 교수님의 강의 말이다!
발단은 내가 유튜브에 있는 NYU 딥러닝 강의 영상에 단 댓글이었다.
얀 르쿤 교수님의 강의를 온라인으로나마 들을 수 있단 사실에 감동받아 이 강의를 한글로 번역해보고 싶다는 댓글을 남겼는데, 얀 르쿤 교수님과 딥러닝 강의를 진행하는 Alfredo님과 연락이 닿았다.
이 인연으로 NYU 딥러닝 강의 사이트를 번역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14주 차까지 모든 강의 노트가 한글로 지원된다!
이 강의의 깃허브와 사이트 관리를 총괄하는 Alfredo 교수님은 깃허브와 슬랙 등, 오픈소스 문화에 상당히 내공이 쌓여있어서 내가 오픈소스 문화를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를 도와 한국어 번역팀을 모으고, 번역 지침 문서를 작성하는 등의 과정은 힘들었지만 굉장히 재밌었고 보람찼다.
나만 알기 아쉬운 딥러닝: 딥러닝 강의해보기
2019년에도 동아리에서 딥러닝 스터디를 운영했지만, 당시에는 나도 많이 미숙했고 딥러닝 입문서를 읽고 따라 하는 수준으로 스터디를 진행했었다. 2020년에는 아예 각 잡고 진행하고자 마음먹고 교내 프로그래밍 동아리에서 딥러닝 강의를 개설했다.
1주일에 1번,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하고 모든 자료와 강의 영상은 온라인에 업로드했다.
강의의 목적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기초는 건너뛰지 않는 딥러닝 강의 만들기였다.
강의를 마친 후 설문에서 많은 학우들이 좋은 평가를 남겨주셔서 행복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이것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 뿌듯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아는 것을 남들과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도 깨달았다.
1주 1 논문 프로젝트: 의미 있는 여름방학 보내기
2학년 1학기까지 딥러닝 전문가를 향해 달리며, 마침내 논문을 읽어볼 때가 왔음을 실감했다.
텐서플로우 코리아 등 딥러닝 커뮤니티에서 한국어 리뷰들을 보고 다운로드해놓은 논문들을 하나씩 읽고, 유튜브에 리뷰 영상을 올리기로 했다.
단적으로 내 딥러닝 학도로서의 삶은 이 프로젝트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프로젝트의 리뷰는 아래 글에서 자세히 다뤘으므로 생략하도록 하겠다.
창업 도전, 실패
그리고 놀랍게도, 1주 1 논문 프로젝트와 동시에 난 창업에도 도전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여름방학 때의 난 몸이 한 세 개쯤 됐었나 싶다.
발단은 친한 과 동기의 권유였다. 해커톤에 나가는데 숟가락 한번 얹어보겠냐는 제안에, 그러겠다고 했다. 꿀보직은 언제나 환영이니까.
교내 해커톤에는 항상 욕심 없이 나가서, 3시간 정도 빡세게 개발을 한 후에, 우승각이 안 보이면 개발을 접었다. 그런데 이번엔 우승각이 왠지 보였다. 그래서 달리니까 우승했다. 와 재수 없어.
해커톤이 끝나니까 갑자기 이 팀 그대로 창업을 하자고 하더라. 팀은 완벽했다.
나와 내 동기가 개발, 다른 팀원 2명이 각각 기획/경영과 디자인을 맡았다. 다들 실력이 출중했고, 각자의 역할뿐 아니라 다른 팀원의 역할에도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며 열린 귀를 갖고 있었다.
방학 내내 서비스 기획과 고도화, 프로토타입 제작을 진행했고, 때때로 모여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나름 경쟁력 있는 아이템이었기에 교내 창업 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사업화는 수익 구조의 부실로 실패했지만, 창업에 필요한 지식들과 협업 스킬을 비롯하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사업에 다시 도전해보겠다는 꿈이 생긴 건 덤이다.
Sic parvis magna
여기까지가 내 2020년의 성과(?)이다.
많다면 참 많은 일을 해낸 한 해였지만, 생각해보면 위에 적지 못한 것들이 더 많다고 느낀다.
2020년은 내게 목표가 생긴 해였고, 목표를 향해 달린 첫 해였다. 사실상 이제야 첫 단추를 끼운 셈이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참 많이 발전했다 싶으면서도, 별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 비해 아는 것도 많아졌고 능력도 생겼지만, 자신감은 오히려 줄어든 기분이랄까.
그럼에도 목표가 생겼고, 거기에 가까워졌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느껴진다.
There's no f______ free diamonds or free benz
이곳엔 오직 숨겨진 blood sweat and tears.
- Bentley 2, The Quiett
최근에 빠진 음악의 한 구절이다. 이 가사를 12월 말에 들었는데, 지금까지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솔직히 blood sweat and tears란 소리를 할 만큼 노력하진 않았다. 그래도 마침내 내 노력의 의미를 안 기분이다.
2020년 나는 내 꿈을 찾았고, 거기에 한 발자국 다가섰다.
2021년에도 목표를 세울 것이다. 그리고 이룰 것이다. 꿈을 이룰 때까지.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내 꿈은 세상에서 제일 힙한 공학자다.
화이팅!
올해 배운 것
- 머신러닝
- 딥러닝이랑 머신러닝, 이제야 제대로 배웠단 느낌이 든다.
- 내가 얼마나 초보였지 깨달았다.
- 자료구조/알고리즘
- 컴퓨터구조
- 확률과통계: 의외로 재밌더라
- Kaggle
- 대회 참여
- 데이터셋 기여하기
- 오픈소스 기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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